쉬는 시간에 읽기 좋은 농담 ✉️ 뉴스레터 ✉️

농담 뉴스레터

#6(1) 100일간의 곡성 일주, 그 시작은요 🪂 (2021년 6월 4일)




<오늘의 진담>
100일간의 곡성 일주, 그 시작은요🪂

: 청춘작당 프로젝트로 귀촌한 '3형제'를 만났습니다.



귀촌, 그것이 알고 싶냐... 싶나요?

도시 생활 지친다, 지속가능한 삶 궁금타, 리틀포레스트 김태리 다음은 바로 나? 지금 여기로부터 훌쩍 떠나서 영화처럼 새로운 일상을 꾸려보고 싶은 마음, 누구에게나 있겠죠. 그렇지만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또, 시골로 가려니 '텃세'니 뭐니... 들려오는 소문과 경험담에 괜히 기죽기도 합니다. 가족도 친구도 아는 사람도 없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걸까요?

오늘은 예비 귀촌러를 위해 청춘작당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전라남도 곡성군 강빛마을에서 100일간 귀촌을 체험해보는 프로젝트입니다. 이를 위해 2020년, 청춘작당 시즌2를 통해 곡성으로 귀촌한 '3형제'를 만났습니다. 진짜 형제는 아니고요, 동그란 안경을 쓴 동그란 얼굴이 닮아서 붙인 별명입니다. 살던 곳도 하던 일도 모두 달랐던 세 사람은 어떻게 ‘곡성에서 100일간 살아봐야겠다’고 결심했을까요?

• 서울에서 나고 자람(강원도에서 잠깐 군 복무)
• 사회체육 전공, 특기는 태권도. 가르치는 일을 해왔음
• 현재 석곡면 지역아동센터에서 아동복지교사로 일하는 중
• ‘푸른구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만의 일을 찾아 탐색 중


• 고향은 청주. 스무 살 이후에는 포항과 대전에서 살았음
• 직장은 대전, 사는 건 곡성인 프로-원격근무러
• 제주에서 5개월간 살 때, '할방이'라는 캐릭터를 만듦
• 주중엔 직장인 디자이너, 주말엔 캐릭터 굿즈 판매 중


• 고향은 화성. 스무 살 이후에는 천안과 서울에서 살았음
• 2년 가까이 다닌 첫 직장을 그만두고 다음 단계를 고민하다가 청춘작당에 지원함
• 현재 팜앤디협동조합 크루. 청춘작당 시즌3 준비 중


🌝 청춘작당 프로젝트 종료 후 189일째. 어떻게 살고 계시나요?

코난 읍내 셰어하우스에 삽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아동복지교사로 일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1, 2년 뒤에도 계속할 수 있는 일인지는 모르니까요. 
헤밍 올해 1월부터 오모랑 같이 살고 있어요. 평일에는 회사 일을 하고, 주말에는 뚝방마켓에 나가서 제가 그린 그림으로 만든 굿즈를 판매해요. 
오모 지난해 12월 팜앤디에 취업해, 청춘작당팀 소속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청춘작당러를 모집하기 위해 오늘 이 자리를 만들었어요. (찡긋)


🌝 청춘작당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코난 원래는 태권도 사범으로 싱가포르에 취업이 됐는데, 비자도 받고 숙소까지 정해놓은 상태에서 코로나19가 터졌어요. 그땐 시간이 지나면 사태가 좀 진정될까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5월이 가고 6월이 돼도 상황이 그대로였어요. 계속 기다릴까, 다른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마침 인스타그램에서 청춘작당 광고를 보고 재밌어 보여서 신청하게 됐어요.
오모 저도 첫 직장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상태였어요. 4월인가부터 인스타그램에 자꾸 광고가 뜨는 거예요. ‘아, 이 자식들 봐라’ 하면서도 괜히 눈길이 가서(웃음).
헤밍 저는 추천 받았어요. 왠지 잘 어울릴 것 같다며. 그 무렵 제가 다니던 회사가 코로나19로 재정난을 겪으면서 월급을 줄이고 재택근무로 전환했거든요. 금전적인 스트레스를 받던 상황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시골에 살아보는 기회에 끌렸어요.



강빛마을에서 태권도 한 판.. 👊


🌝 청춘작당 이전에도 귀촌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나요?

코난 네. 아버지가 귀촌에 관심이 많으셔서, 언젠가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헤밍 아니요. 저는 어디에 살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 사람인데, 대신 서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나와 살다 보니 월세를 항상 생각하게 되거든요. 근데 서울은 월세부터 너무 차이가 나니까 거부감이 있었어요. 
오모 한 40, 50대에? 시골에서 그냥 조그만 개인 카페를 열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은 했었어요. 젊을 때 내려와서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어요. 근데 인스타그램 광고에서 ‘젊은 친구들도 살 수 있다’고 말하니까 궁금해졌어요.


🌝 일상에서 떠나 100일간 ‘공백’을 만드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듯해요.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오모 오기 전까지도 많이 고민했어요. 친언니가 현실적인 조언을 잘 해주는 편이라 언니랑 많이 의논했어요. 언니가 ‘너 곡성 가서 뭐 할 거니, 그 시간에 취업 준비를 해라’며 말리기도 했는데, 그래도 직장을 그만두고 쉬다 보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새로운 걸 해보고 싶더라고요. 제가 또 회사를 가면 언제 이런 경험 해보겠어요. 그전에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왔어요.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또 저마다 다른 마음가짐을 안고 전라남도 곡성군 강빛마을에 청년 22명이 모였습니다. 2020년 8월 20일부터 11월 27일까지, 서로를 알아가고, 지역과 협업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자연과 더불어 쉬면서 100일을 보냈습니다. 청춘작당은 이들에게 100일간 숙소와 식비를 제공하고, 프로젝트를 연계하고, 100일 이후 정착을 원하는 사람들을 돕습니다.


🌝 실제 경험한 청춘작당 100일은 어땠나요?

헤밍 힘들었어요(웃음)! 재택근무와 병행하는 걸 미리 합의하긴 했지만, 막상 오니까 일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고 다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서 밤늦게까지 어울리는 분위기였어요. 저는 새벽에 출근해서 오전에 일해야 하니까, 같이 어울리지 못하는 게 좀 아쉬웠어요. 중간 50일 프로젝트와 병행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좀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죠. 
오모 100일이 꼭 유토피아 같았어요.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새로운 제 모습을 발견하거나, 생각을 전환하기도 하고, 생각만 하던 걸 실행할 힘을 얻기도 하고요. 자연을 가까이 지켜보는 것도 좋았어요. 가끔 일몰이나 별을 가만히 바라보면 벅차오르기도 하고, 평화를 느끼기도 해요. 고민하다가 접수 마지막 날이 돼서야 신청서를 냈지만, 그때의 나 칭찬해.



강빛마을 숙소 마당에서 시작된 오모의 미니 텃밭 🌱


🌝 100일이 끝나고도 곡성에 머물러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는? 

코난 전 처음부터 어느 정도 정착할 걸 결심하고 내려왔어요. 독립이 정말 하고 싶었거든요. 서울에서 독립하는 것보다 비용도 덜 들고, 뭐라도 해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마침 중간 50일 프로젝트로 진행했던 게 좋은 피드백을 받아서, 더 발전시켜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였는데 반응이 괜찮아서 실제로 방학 때 진행하는 기존 캠프에서 운영해봤거든요. ‘푸른구름’이 팀 이름이었는데, 그대로 따와서 교육 서비스업을 창업하고 사업자 등록까지 했습니다. 
오모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백일 동안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사람들이 좋아서 남고 싶은 건지, 내가 정말 곡성에 살고 싶어서 남고 싶은지 헷갈리는 거예요. 곡성의 자연이 되게 좋았거든요. 그래서 일 년 사계절을 경험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일자리도 마련해서 한번 살아보자고 결심한 거예요. 다시 돌아가도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있지는 않았으니까요. 
헤밍 오모가 같이 살재서(웃음). ‘내가 거지가 되면 어떻게 해?’ 하니까 ‘한 명 정도는 먹여 살릴 수 있어’ 이래가지고. 와, 심쿵. 사실 100일 보내면서 대전 자취방을 정리했거든요. 다른 곳으로 갈지, 제주도를 갈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는데 다들 제가 가장 남기 쉬운 사람이라고 했어요. 저는 이미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곡성에 남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아서 남게 됐어요.


🌝 귀촌 후 달라진 것이 있나요? 혹은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요?

...는 분량 조절 대실패!😵

이후 #6(2): 101번째 아침에도 곡성에서 눈을 떴을 때👀로 이어집니다!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농담진담 구독하기